
괴물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게 정상일까요, 아니면 연민을 느끼는 게 정상일까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완전히 뒤집게 됐습니다. 1931년 보리스 카를로프의 프랑켄슈타인부터 수많은 각색 영화들을 봐왔지만, 이번 작품은 제가 아는 모든 '괴물 이야기'와 달랐습니다. 델 토로는 괴물을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로 그려냅니다.
괴물의 손
델 토로는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눈과 손"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빅터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이 있습니다. "얼굴은 허상이지만 손은 진실을 말한다"는 대사였죠.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델 토로가 왜 그토록 손의 디테일에 집착했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크리처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손을 통해 교감합니다. 장님은 그의 손을 잡아주고, 미아는 감옥에서 그의 손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순간 빅터는 무너진 자신의 손으로 크리처의 손을 만집니다. 델 토로는 이 장면들을 마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처럼 신과 인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승화시켰습니다. 제가 판의 미로를 처음 봤을 때도 느꼈던 건데, 이 감독은 손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천재적입니다. 특히 크리처의 오른손 부분만 보리스 카를로프 버전을 오마주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고전에 대한 존중과 자신만의 해석을 동시에 담아낸 거죠. 솔직히 이런 섬세함은 CG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봅니다.
태양과 아들인 관계
영화에서 빅터가 크리처에게 가르친 첫 단어는 'Sun'이었습니다. 태양을 가리키며 반복해서 말하죠. 그리고 영화는 지평선 너머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크리처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저는 이 순환 구조가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델 토로가 평생 천착해온 '아버지와 아들' 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델 토로는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가 매우 긴장되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서로 사랑했지만 대화할 수 없었고, 자신도 아버지가 됐을 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죠.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 아버지, 한 아들, 그리고 또 한 아버지... 누군가가 이 고통의 전달을 멈출 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Sun'과 'Son'의 발음이 같다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크리처에게 태양은 곧 아버지이고, 자신은 영원히 그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아들입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 선장은 태양을 등지고 북극으로 가려 하지만, 크리처는 마지막에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저는 이 대비가 '용서'와 '겸손'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봅니다. 제 경험상 델 토로의 다른 작품인 피노키오에서도 똑같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나의 아들, 나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노래 가사를 델 토로가 직접 썼다는 걸 알고 나니, 이 두 영화가 쌍둥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과 상징
델 토로는 왜 굳이 1857년 크림 전쟁이라는 구체적 시공간을 설정했을까요? 동화는 보통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데 말이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델 토로에게 전쟁은 인간성을 측정하는 메트로놈이자, 괴물을 탄생시키는 가장 큰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크리처 창조 장면은 제가 본 모든 프랑켄슈타인 각색 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보통 이 장면은 공포스럽게 그려지는데, 델 토로는 이를 로맨틱한 오페라처럼 연출했습니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빅터는 마치 데이비드 보위가 콘서트를 준비하듯 황홀한 표정으로 작업합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수많은 시체 조각들이 널려 있죠.
이 시체들은 전쟁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크림 전쟁이라는 잊혀진 전쟁, 나폴레옹 전쟁만큼 크지 않아서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진 그 전쟁의 희생자들이죠. 델 토로는 크리처를 "전쟁의 모든 희생자들이 되살아난 존재"로 설정했습니다. 무기 상인인 크리스토프 왈츠의 캐릭터, 전사자들의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크리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각들을 기억한다"는 대사까지. 모든 게 연결됩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에 왜 이렇게 많은 시체를 이어붙였는지 의아했습니다. 하나의 시체로 만들면 더 단순하고 명확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하지만 델 토로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습니다. 크리처는 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전쟁 희생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안에 누구의 영혼도 들어있지 않은 텅 빈 존재여야 했던 겁니다. 그래서 더 슬프고, 그래서 더 순수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거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계속 생각에 잠겼습니다. 델 토로가 말한 것처럼, 그의 모든 영화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상태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고, 상처와 결핍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죠. 이 영화의 크리처는 수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진,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존재입니다. 제 경험상 델 토로의 영화는 항상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판의 미로에서도,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앞으로 이 영화를 보실 분들께 한 가지만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괴물의 얼굴만 보지 마시고, 손을 주목해보세요. 그리고 영화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 태양의 위치를 기억해보세요. 델 토로는 모든 것을 이미지로 말하는 감독입니다. 그의 영화에서는 디자인이 곧 스토리이고, 색채가 곧 감정이며, 손이 곧 영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