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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죽음 (이미지, 집착, 자기파괴)

by honeyball 2026. 4. 22.

베니스에서의 죽음 영화 포스터

자기 파괴적인 강렬한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이렇게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가 둔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화면을 끊지 못했습니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1971년작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가 어떻게 사람을 붙잡아두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미지로 내면을 대신한다는 것

토마스 만의 원작 소설은 인물의 내면을 언어로 집요하게 해부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비스콘티는 그 내면을 거의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사는 드물고, 주인공 구스타프 아셴바흐는 대부분의 시간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냅니다. 원작에서 작가였던 아셴바흐를 비스콘티는 작곡가로 바꿉니다. 이건 단순한 설정 변경이 아닙니다. 감정을 언어 대신 소리로 전달하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출처:Operawire). 실제로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이 흐르는 장면들에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아셴바흐의 상태가 직관적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그 장면들에서 처음으로 이 영화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했습니다. 비스콘티가 화면 안에 쌓아 올린 이미지들은 묘하게 정밀합니다. 데 바니 호텔에 도착하는 장면, 폴란드 가족 사이에서 처음 타지오를 발견하는 순간, 콜레라가 번지는 베니스를 서성이는 아셴바흐의 뒷모습까지, 각각의 장면이 이야기를 전진시키기보다는 하나의 상태를 깊이 파고드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리뷰에서는 비스콘티가 이야기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데 거의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저는 그게 결함이 아니라 이 영화의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착이 담담하게 그려질 때 더 불편한 이유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타지오를 향한 시선 그 자체보다도 그 시선이 전혀 과장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집착을 다루는 서사는 어딘가에서 감정을 끌어올리거나 인물을 극적으로 만드는데, 비스콘티는 그러지 않습니다. 아셴바흐의 변화는 굉장히 서서히, 그리고 집요하게 진행됩니다. 처음 등장할 때 절제된 예술가처럼 보이던 인물이 점점 외모를 꾸미기 시작하고, 스스로도 혐오했을 법한 모습으로 조금씩 바뀌어갑니다. 호텔 이발사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염색하고 얼굴을 치장하는 장면은 제가 봤을 때 가장 오래 남은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비극처럼 연출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처연합니다. 더크 보가드의 연기는 대부분의 구간에서 탁월합니다. 특히 타지오가 해변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아셴바흐 곁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접촉 없이도 그 긴장감이 화면 밖까지 전달됩니다. 제가 직접 보기 전까지는 정적인 장면이 그렇게까지 강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아셴바흐가 교향곡을 지휘하다 청중에게 외면당하는 회상 장면은, 그 긴장감과 비교하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다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타지오는 인물이라기보다 아셴바흐가 자신의 예술과 삶에서 끝내 닿지 못했던 어떤 이상에 가깝습니다. 그걸 직접 말로 설명하지 않고 시선과 거리감으로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정직합니다.

자기 파괴가 느린 속도로 완성될 때

영화의 배경인 베니스는 관광지의 활기 대신 정체된 공기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떠다니듯 움직이고, 도시 전체가 콜레라 앞에서 서서히 닫혀갑니다. 저는 이 공간이 아셴바흐의 내부 상태를 물리적으로 구현해 놓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바깥이 무너지는 속도와 그가 무너지는 속도가 거의 같습니다. 이 영화의 전개 방식은 일반적인 서사 구조와 다릅니다. 갈등이 쌓이고 해결되는 흐름이 없습니다. 대신 하나의 감정이 조금씩 확장되다가 결국 파국으로 이어집니다.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처음에는 답답할 수 있는데, 보다 보면 그 느림 자체가 피할 수 없는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상태 안에 같이 있는 느낌이 됩니다. 마지막 해변 장면에서 아셴바흐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나면, 이 인물을 이해했다는 생각보다는 끝까지 지켜봤다는 감각이 남습니다. 그게 꽤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공감보다는 목격에 가까운 감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강하게 남습니다. 2025년 기준으로 봐도 이 정도의 절제로 한 인물의 붕괴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출처:The Article). 친절하지도 않고 쉽게 공감하기도 어려운 영화인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이 영화가 불편했다는 반응과 지루했다는 반응 모두 이해합니다. 저도 초반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면 그 불편함이 영화의 실패가 아니라 의도였다는 걸 알게 됩니다. 비스콘티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며 보거나, 토마스 만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보면 이 영화가 선택한 방식들이 더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영화 장면


참고: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1/mar/04/death-in-venice-review-slow-precise-beautiful-film-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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