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드라마를 볼 때 줄거리보다 분위기를 먼저 읽는 편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보다 그 장면이 어떤 감정을 남기느냐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Bridgerton 시즌 4도 그런 기대를 안고 접했다. 베네딕트와 소피의 신데렐라 구도가 어떤 온도로 전개되는지, 그리고 그 감정선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쌓이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동시에 이번 시즌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누가 중심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눈길이 갔다.

한국계 호주인 배우 캐스팅이 돋보이는 시즌4
브리저튼을 좋아하는 이유를 떠올려보면, 결국 그 특유의 혼합된 감각 때문이다.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팝 음악이 흐르고, 현대적인 대사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이러한 엉성한 어긋남이 오히려 이 시리즈의 개성이 된다. 시즌 4는 그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방향을 조금 바꾼다. 특히 소피 역에 한국계 호주인 배우가 파격적으로 캐스팅되면서, 이야기의 결이 단순한 ‘동화적 로맨스’에서 한 단계 확장된다. 소피는 더 이상 익숙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계급뿐 아니라 인종과 정체성까지 교차하는 위치에 놓인 인물로 읽힌다. 이는 이 시리즈가 그동안 시도해 온 ‘색깔 있는 캐스팅’을 한 걸음 더 밀어붙인 선택이다. 이러한 캐스팅으로 인해 아마도 역대 최대 악플과 리뷰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큰 이슈였다. 이러한 캐스팅뿐만 아니라 베네딕트 역시 이전보다 더 현실적인 갈등 속에 놓인다. 자유로운 성향의 인물이 가족과 사회의 기대와 충돌하는 과정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다만 초반부에서는 감정선이 다소 급하게 전개된다는 인상을 줘서 조금 아쉬운 면도 있다. 물론, 베네딕트가 빠르게 깊은 감정에 빠지는 과정이 캐릭터의 성향과 완전히 어긋나지는 않지만, 설득력에서는 약간 흔들리는 지점이 있다.
파트 2에서 살아나는 감정선
파트 2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틀은 유지되지만, 그 안에서 던지는 질문은 훨씬 현실적이다. 사랑이 단순한 설렘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 이 드라마는 비로소 이야기에 힘이 실리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건, 이 관계가 단순히 개인의 감정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인종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서로를 선택하는 일이 곧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는 일이 되고, 그 선택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돼서 더 흥미진진해진다. 베네딕트와 소피의 관계는 환상적으로 시작되지만, 결국은 누구나 예상했듯, 현실적인 조건 위에서 시험받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히 사랑에 관한 얘기를 넘어서서 역사 및 사회 전반적인 배경을 끌고 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전 시즌보다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로맨스가 화려하게 포장되기보다, 매번 다가오는 선택의 무게를 통해 쌓인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파트 1에서 인물의 내면을 조금 더 탄탄하게 쌓아줬다면, 파트 2의 감정이 훨씬 크게 울렸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 시즌은 그동안 많은 아쉬움을 낳았던 방식들, 예를 들면, 감정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많이 보였던 것 같다.
본편보다 인상적이었던 서브플롯
브리저튼을 보다 보면, 메인 커플보다 주변 인물들이 더 오래 남는 순간이 있다. 시즌 4는 그 경향이 특히 두드러진다. 바이올렛 브리저튼의 이야기는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인상적인 축 중 하나다. 자녀들의 삶을 중심으로 살아오던 인물이 이제 자신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마커스 댄버리와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상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돼서 꽤나 흥미로웠다. 엘로이즈, 프란체스카, 그리고 페넬로피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레이디 휘슬다운이라는 정체가 드러난 이후의 페넬로피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하인과 메이드들의 시선이 더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주인공 소피의 정체성과 관렸있기 때문일 텐데, 이러한 연출은 이 세계를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여주려는 시도가 읽힌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설정의 확장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점점 더 다양한 위치의 인물들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오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한국계 배우가 연기하는 소피의 존재 역시 그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결국 시즌 4는 로맨스를 유지하면서도, 그 로맨스가 놓인 조건과 시선을 더 넓히려는 시도다.
결론적으로 이번 시즌은 완전히 새로운 변화라기보다, 익숙한 틀 안에서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단계에 가깝다. 다만 그 확장의 방향이 분명해졌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더 의미 있는 시즌이라고 느껴진다. 넷플릭스 장수 시리즈인 만큼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와 이야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