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발디'라는 이름을 영화 제목 옆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생애와 음악 세계를 다룬 전기 영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비발디가 아니라 고아원의 한 소녀를 따라갑니다. 프리마베라는 작곡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을 삶의 언어로 삼은 한 인물이 자기 자신을 인식해 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소리만 있는 공간,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18세기 베네치아,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는 고아들을 수용하고 음악을 가르치던 기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설정은, 이곳 소녀들이 관객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무대 뒤에서 연주만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소리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사람은 지워지는 구조, 저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출처:KBS). 주인공 세실리아(테클라 인솔리아)는 이 공간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살아온 고아입니다. 그녀에게는 두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친어머니가 언젠가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 그리고 계속 음악을 하는 것. 그런데 고아원을 나가게 되면 연주는 금지됩니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냥 규칙이고, 그 규칙은 엄격하게 지켜집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딸을 찾으러 온 낯선 여성을 세실리아가 충동적으로 끌어안는 장면입니다. 그 여성은 세실리아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세실리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안기는 그 순간, 대사 한 마디 없이 세실리아의 결핍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처음으로 분명하게 감지했습니다. 세실리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 어머니의 존재, 가족, 자신에게 닿을 수 있는 과거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비발디와 세실리아라는 인물
비발디(미켈레 리온디노)가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소녀들이 그의 시선을 끌기 위해 긴장하는 가운데, 정작 비발디는 세간의 명성과 달리 몸이 허약하고 초라한 인상입니다. 이 설정 자체가 흥미로웠습니다. 음악적 천재성과 육체적 쇠락이 한 몸 안에 공존하는 인물로 그를 그려내면서, 영화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관념을 처음부터 조금씩 비틀어갑니다. 세실리아와 경쟁자 라우라(힐데가르트 데 스테파노) 사이의 바이올린 대결 장면은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한 부분입니다. 붉은 복면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끝내 둘만 남는 구조, 수년간의 연습이 단 하나의 순간으로 수렴되는 그 긴장감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발디가 선택하는 연주자가 누구인지,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고 나면 비발디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시선도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칭찬을 구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하면서, 정작 그 자신은 관객의 갈채를 갈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테클라 인솔리아의 연기에 대해 한 가지만 말하자면, 감정을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 역할에 잘 맞았습니다. 말보다 시선으로, 대사보다 연주 장면에서 감정이 드러나는 방식이 더 설득력 있었습니다. 비발디가 처음 등장해서 연주 테스트를 진행할 때, 다른 아이들이 하나씩 지쳐 포기하는 와중에도 세실리아가 끝까지 버티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 하나만으로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납득했습니다. 짧지만 가장 효율적인 인물 소개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음악이 전개하는 이야기
이 영화는 드라마적으로 강하게 치고 나가는 작품이 아닙니다. 세실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아원이라는 공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결혼이라는 선택지에 묶여 있는 상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야기가 흘러가는 건, 외적 사건보다 세실리아의 내면 인식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한계라고 봅니다.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로 기능한다는 점은 분명히 좋았습니다. 파비오 마시모 카포그로소의 음악이 초반에는 조용하게 깔리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선명하고 강해지는 흐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 구조입니다(출처:ELLE). Adagio에서 Allegro로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하면 조금 과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보는 내내 그런 감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이 이야기의 속도를 직접 결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만 비발디와 세실리아 사이의 관계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 자체는 자연스럽게 쌓여가지만, 비발디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혹은 세실리아가 그를 통해 정확히 무엇을 얻는지가 충분히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스승이라기보다는 변화를 촉발하는 장치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후반부에 세실리아가 그에게 "이제야 용기가 생긴 건가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더 강하게 울렸어야 할 것 같은데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감정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그 대사가 나온 느낌이랄까요. 프리마베라는 결국 '음악이 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끝까지 일관되게 붙들고 가는 영화입니다. 세실리아의 선택들, 특히 후반부의 결정적 순간은 그 질문에 대한 그녀만의 대답입니다.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고 보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 인물이 자기 자신을 조용히 확인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데 집중한다면 꽤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출처:문화저널 21). 비발디 음악을 좋아하거나, 인물 중심의 조용한 드라마를 즐기는 분이라면 한 번쯤 찾아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