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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의 남성 (시선 전복, 몸, 낭만화)

by honeyball 2026. 3. 14.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 영화 장면

여성 감독이 남성을 바라볼 때 남성 감독과 다른 걸 포착할까요? 아니면 그건 그냥 성별 본질주의일까요? 저는 클레어 드니의 <보 트라바유>를 보고 나서야 이 질문에 대한 제 입장이 조금 명확해졌습니다. 남성성을 다룰 때 감독의 성별이 자동으로 더 나은 통찰을 보장하진 않지만, 분명 다른 종류의 거리감과 감각을 만들어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시선의 전복

영화사에서 남성은 오랫동안 행동하는 주체였고, 여성은 보이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보 트라바유>는 이 구도를 뒤집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 남성들의 몸이 관찰되고, 해석되고, 심지어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배치됩니다. 클레어 드니는 훈련 중인 병사들의 근육, 땀, 움직임을 남성 감독들이 여성 배우를 찍던 방식과 비슷하게 담아냅니다.

이 장면들을 두고 많은 평론가들이 "동성애적 욕망의 은유"라고 해석했다고 합니다. 주인공 갈루프가 신병 센테인에게 느끼는 집착을 억압된 성적 욕망으로 보는 시각이죠. 하지만 저는 이 해석이 너무 단순하다고 봅니다. 남성 간의 긴장이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동성애"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감정의 결—동경과 질투, 존경과 경쟁, 동일시와 파괴 충동—이 뒤섞여 있는데도요. 갈루프가 센테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저 사람이 되고 싶다"와 "저 사람을 파괴하고 싶다"가 공존합니다. 센테인은 외인부대라는 경직된 남성 공동체 안에서도 자기 영혼의 일부를 지켜내는 인물입니다. 그는 규율을 따르면서도 규율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습니다. 이게 갈루프에겐 견딜 수 없는 위협입니다. 자신의 정체성 전부를 외인부대 장교라는 지위에 걸어놓은 사람에게, 그 시스템 바깥에 자유로운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모욕이니까요.

규율된 몸

드니가 포착한 건 남성성의 아름다움만이 아닙니다.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어떻게 억압되고 규율되는지도 보여줍니다. 사막에서 반복되는 훈련, 명상, 요가, 장애물 코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가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안내인이 "부드러움은 위대하고 강함은 무가치하다. 딱딱해진 것은 승리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장면 말입니다.

외인부대는 남성을 강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남성을 경직시킵니다. 감정을 죽이고, 자율성을 박탈하고, 조건부 가치만 남깁니다. "네가 이만큼 해내면 남자로 인정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하죠. 이건 단순히 군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성을 다루는 많은 사회 구조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남성에게 "너는 이래야 한다"는 금지 목록을 주고, 그 목록을 지키면 남성답다고 인정해주는 시스템이죠. 갈루프는 이 시스템에 완전히 포섭된 인물입니다. 그래서 시스템 밖에 있는 센테인이 위협적입니다. 결국 갈루프는 센테인의 나침반을 조작해 사막에서 길을 잃게 만듭니다. 센테인은 현지인들에게 구조되지만, 조작된 나침반이 기지로 돌아오면서 갈루프의 범행이 드러나고 그는 불명예 제대를 당합니다. 자신을 정의해주던 시스템에서 추방당한 갈루프는 이제 민간인 세계에서 목적 없이 떠돕니다.

낭만화 위험

저는 이 영화의 문제의식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동시에 조심스러운 지점도 있다고 봅니다. 여성 감독이 남성을 바라볼 때 생기는 통찰이 분명 있지만, 그 시선이 자동으로 더 진실하거나 본질적인 건 아니니까요. 어떤 여성 감독은 남성을 예민하게 포착하지만, 어떤 경우엔 오히려 낭만화하거나 상징화할 위험도 있습니다. 반대로 남성 감독도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섬세하게 다룰 수 있고요. 결국 중요한 건 성별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윤리와 감각으로 인물을 대하는가"입니다. 드니의 시선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그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남성성을 권력의 형식으로만 보지 않고 동시에 상처받고 고립된 존재 방식으로도 보기 때문입니다. 이 이중적 시선이 없었다면 영화는 그저 "남성도 피해자다"는 단순한 메시지로 환원됐을 겁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갈루프는 춤을 춥니다. 그가 평생 숨겨왔던 어떤 열정, 어떤 자유로운 영혼이 마침내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드니는 이 장면을 통해 남성성이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설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런 삶도 가능했을 텐데"라는 비극적 여운만 남깁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해답도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걸 말하니까요.

남성성에 대한 비평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단순히 도덕적 비난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왜 그런 형태가 반복되는지, 그 안에서 남성들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드니의 <보 트라바유>는 그 균형을 잘 잡은 영화입니다. 여성 감독의 시선이 만들어낸 거리감 덕분에, 우리는 남성성을 새롭게 볼 기회를 얻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중요한 건 결국 어떤 태도로 인간을 대하느냐는 질문이니까요.

타르코프스키의 &lt;스토커&gt; 영화 장면 이미지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5WaBrceY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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