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출국이 금지되고, 작품을 찍었는데 자국 관객에게 보여줄 수 없고, 심지어 촬영 자체가 불법이 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부분은 포기하겠지만,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30년간 그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최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인터뷰를 보면서,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검열 환경이 만든 영화 형식
보통 영화감독의 스타일은 개인적 미학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파나히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의 영화 형식 상당 부분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인터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저는 7개월 정도 감옥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보게 되죠"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이슬람 공화국이 저를 감옥에 넣었기 때문에, 제가 그 이야기들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거니까요"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 대목에서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억압이 오히려 창작의 원천이 된 셈이니까요.
그가 수감 중 들었던 이야기들은 그대로 영화 속 대사가 되었고, 감옥에서 눈가리개를 쓰고 벽을 보며 뒤에서 들려오는 심문자의 목소리에 집중했던 경험은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촬영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작은 카메라를 써야 했고, 배우를 공개적으로 모으기 어려웠기 때문에 택시 운전사 같은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약에서 나온 선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만의 독특한 영화 언어가 되었습니다. 제약이 스타일을 만든 역설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년간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
이동진 평론가가 "30년 동안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냐"고 묻자, 파나히는 아주 짧게 답합니다. "저는 영화 만드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줄 모릅니다." 이 대답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대답에서 두 가지를 읽었습니다. 첫째는 순수함입니다. 그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정치 투쟁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정치적 상황과 부딪힌 것입니다. 둘째는 절실함입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건,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뜻이니까요.
그는 "사회적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사회에서 어떤 사건을 보면 그것이 아이디어가 되어 영화 이야기를 세운다는 겁니다. 감옥에 갇히면 감옥 이야기를, 출국 금지를 당하면 그 경험을 영화로 만듭니다. 이런 방식은 일종의 생존 본능처럼 보입니다. 현실이 재료를 던져주면, 그는 그걸 영화로 소화해냅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증언이자 기록이 되는 겁니다.
자국 관객과 함께 보지 못한 영화들
인터뷰 말미에 이동진 평론가는 "언젠가 이란 관객들이 감독님의 영화들을 극장에서 제대로 볼 날이 올 텐데, 그날을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냐"고 묻습니다. 파나히의 대답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거의 한 번도 이란 관객과 제 영화를 함께 본 적이 없습니다."
영화감독에게 관객과의 소통은 필수입니다. 반응을 보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죠. 그런데 파나히는 30년 가까이 그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나올 때마다 제 영화는 해외 관객과 함께 봤고, 다른 나라들에서 봤죠"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에서 저는 묘한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그가 만든 영화는 이란 사회의 이야기이고, 이란 사람들의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란 관객은 볼 수 없는 겁니다. 이건 단순히 상영 금지 문제를 넘어서,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자연스러운 대화 자체가 차단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젠가는 그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미스터리가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은 강력한 미스터리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바히드 일행이 붙잡은 남자가 정말 과거 자신들을 고문했던 '에크발'이 맞는지, 관객은 끝까지 궁금해합니다. 그런데 파나히는 클라이맥스에서 그가 진짜 에크발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영화에서 그가 에크발인지 아닌지가 핵심은 아닙니다. 제가 던지고 싶었던 것은 미래를 위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가 진짜 관심 있는 건 "이 정권 이후에도 폭력의 순환이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어딘가에서 끊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파나히의 영화가 단순히 과거를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독재 정권 한가운데서 영화를 만들면서도, 이미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바히드는 에크발의 발소리(혹은 환청)를 듣고 얼어붙습니다. 이 소리가 실제인지 심리적인 것인지 관객은 알 수 없습니다. 파나히는 일부러 그 의심 상태에 관객을 남겨둡니다. "관객이 극장을 나가서 다시 생각하고, 영화가 말하려는 것,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질문을 갖게 만들고 싶었다"는 게 그의 의도입니다.
결국 이 인터뷰는 영화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보여줍니다. 거대한 제작비나 최신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나옵니다. 파나히는 작은 카메라와 몇 명의 사람만으로도 세계 최고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독립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현실과 어떻게 싸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저는 이 인터뷰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믿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