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정치 뉴스가 20년 전 영화의 재연처럼 보인 적 있으신가요? 최근 트럼프가 호주 총리에게 이란 여자 축구선수 5명의 망명을 공개적으로 압박한 사건이 그랬습니다. 호주는 결국 이들에게 망명을 허용했고,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호주가 안 받으면 미국이 받겠다"고까지 썼습니다. 그런데 이 구도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2006년 영화 'Offside'와 너무 닮았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저도 이 기사를 읽으면서 영화가 현실을 예측한 건지, 아니면 억압의 구조가 그냥 반복되는 건지 헷갈렸습니다.
영화 속 여성들은 왜 경기장에 못 들어갔을까
파나히의 'Offside'는 2005년 이란-바레인 월드컵 예선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 속 다섯 명의 젊은 여성은 남자로 변장해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 몰래 들어가려 합니다. 이란은 여성의 스포츠 경기장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군인들에게 붙잡혀 경기장 밖 펜스 안에 갇힌 채 경기 내내 간접 중계만 들어야 했습니다. "말썽 피우지 말고 들어가", "고개 숙여"라는 말을 들으며 체포를 기다렸죠. 저는 이 장면이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는 걸 최근 뉴스에서 확인했습니다. 지난주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컵 예선전에서 이란 여자 대표팀 선수 5명이 국가 제창을 거부했습니다. 이란 국영방송 앵커는 이들을 "전시 반역자"라고 불렀고, "전쟁 상황에서 국가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기 후 선수들은 이란 당국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뒷문으로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영화 속 여성들이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려던 것과, 현실의 선수들이 몰래 빠져나가야 했던 것, 이 구도가 묘하게 대칭적이지 않나요? 파나히는 이 영화를 정부 허가 없이 실제 경기장에서 촬영했습니다. 영화 속 여성들은 끝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란이 승리하자 거리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일시적으로 풀려납니다. 하지만 영화는 불확실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들이 이후 당국으로부터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열린 결말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순간의 승리가 구조적 억압을 끝내지는 못하니까요.
트럼프의 망명 압박, 어떻게 봐야 할까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습니다. "호주가 이란 여자 축구팀을 강제로 돌려보내는 건 끔찍한 인도주의적 실수다. 이들은 이란에 돌아가면 죽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 마세요, 총리님, 망명을 허용하세요. 미국은 호주가 안 받으면 우리가 받을 겁니다." 호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결국 5명에게 망명을 허용했습니다. 이 결정이 트럼프의 압박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진행 중이던 절차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이 속도를 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트럼프가 이번에 '옳은 일'을 한 걸까요? 결과적으로는 생명을 구한 방향으로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서사가 너무 쉽게 "트럼프의 예상 밖 선행"으로 소비되는 게 조금 불편했습니다. 같은 시기 미국 정치 전반은 이민과 망명 문제에서 일관되게 인도주의적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 하나만 떼어내면 정치인의 이미지 세탁용 서사처럼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트럼프 개인의 극적 제스처보다, 왜 여성 선수들이 애초에 국가를 떠나야만 안전해지는 상황에 놓였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 아닐까요? 호주의 망명 허용 배경에는 이란 내 탄압 우려와 국제적 압박이 함께 있었고, 이란 당국은 이를 정치화하며 반발했습니다. 이 구조를 보면, 이 사건은 트럼프를 새롭게 보게 만드는 뉴스가 아니라, 파나히가 20년 전부터 다뤄온 억압의 현실이 여전히 너무 현재적이라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왜 계속 현실을 앞서갈까
파나히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계속된 자유 표현과 국가 통제 사이의 긴장을 평생 기록해온 감독입니다. 2000년 '서클'로 페미니즘 관점에서 체제를 비판했고, 'Offside'로 그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이후 출국 금지, 수감, 부재판 징역형 선고 같은 탄압을 직접 겪었습니다. 2025년에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란 정권 비판과 관련해 재판과 형벌 위험 속에 놓여 있습니다. 'Offside'가 할리우드 리포터의 역대 최고 스포츠 영화 14위, 롤링스톤의 21세기 최고 영화 100편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단순히 영화적 완성도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이 영화는 팬의 열정이 가부장제와 억압을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그 승리가 얼마나 일시적이고 불확실한지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 속 여성들이 이란 팀을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이란 체제로부터 처벌받을 위기에 놓인 그 모순이, 지금 망명을 선택한 선수들의 상황과 정확히 겹친다고 봅니다. 영화 속 아자디 스타디움은 원래 샤 시절 '아리아메르'라는 이름이었지만 혁명 후 개명됐습니다. 파나히는 이 공간을 통해 1979년 이후 잃어버린 것들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경기장 밖 펜스에 갇힌 여성들은 간접 중계로만 경기를 들어야 했고, 이는 많은 이란인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이상하게 단절된 채 멀리서 소식만 듣는 현실과 닮았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이란이 승리하고 거리 축제가 벌어지지만, 여성들은 끝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트럼프와 앨버니지가 선수들에게 일시적 안전을 제공했지만, 그들의 장기적 운명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이 점에서도 영화와 현실은 묘하게 평행합니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 확인한 건, 파나히의 영화가 미래를 예측한 게 아니라 억압의 구조가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인의 한 번의 발언이나 결정보다, 왜 여성들이 여전히 축구를 보거나 뛰는 것만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파나히의 시선이 왜 여전히 유효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현실은 아직 진행 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