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익스피어의 아들 햄넷을 다룬 영화가 정작 셰익스피어 이야기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위대한 작가의 창작 과정을 기대하겠지만, 실제로 이 영화는 한 가족의 슬픔을 2시간 내내 따라갑니다. 11세에 세상을 떠난 아이와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이 전부입니다.
감정 강요처럼 느껴진 순간들
제시 버클리의 연기는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조용한 신비로움에서 시작해 격렬한 슬픔까지, 그녀는 모든 감정선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폴 메스칼도 나름 선전했지만 솔직히 제시 버클리 앞에서는 누구든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영화가 이 훌륭한 연기를 너무 믿고 관객의 감정을 쥐어짜려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절정부의 울부짖음 장면은 분명 연기적으로는 놀라웠지만, 저는 그 순간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됐습니다. 영화가 "지금 울어야 할 타이밍"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게 너무 명확하게 느껴졌거든요. 제 경험상 진짜 슬픈 영화는 조용히 다가옵니다. 관객 스스로 감정을 느낄 여지를 주죠. 하지만 햄넷은 그 여지를 거의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죽음이라는 소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비극적인데, 영화는 거기에 더해 모든 장치를 동원해 감정을 극대화하려 했습니다. 예를들면,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막스 리히터라는 작곡가와 작업했습니다. 리히터의 음악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여성 합창을 중심으로 한 코랄 사운드, 르네상스 시대 악기들의 샘플링까지, 모든 게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감독은 리히터가 이 영화를 위해 작곡한 곡을 버리고, 그의 다른 유명 곡을 삽입합니다. 바로 '온 더 네이처 오브 데이라이트'라는 곡입니다. 이 곡은 이미 컨택트, 셔터 아일랜드, 심지어 이스트엔더스 같은 TV 드라마에서까지 쓰인 곡입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이 선택이 크게 논란이 됐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눈물을 유도하는 장치"라고 혹평했고, 또 어떤 이는 "제시 버클리가 제안한 선택이 장면을 재정의했다"고 옹호했습니다. 저는 전자 쪽에 가깝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곳에서 쓰인 곡을 듣는 순간, 저는 영화 밖으로 튕겨나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노매드랜드에서 보여준 클로이 자오의 절제된 연출을 생각하면, 이런 선택은 너무 안전하고 계산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셰익스피어 영화가 아니라 가족 드라마로 봐야 하는 이유
이 영화의 제목은 햄넷이지만, 실제로는 어머니 애그니스의 영화에 가깝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오히려 배경에 가깝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극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아들이 아플 때도 바로 오지 못합니다. 영화는 아이의 병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 가족 각자가 슬픔을 견디는 방식을 섬세하게 따라갑니다. 어머니는 자연 속에서 위안을 찾고, 아버지는 글쓰기로 슬픔을 승화시킵니다. 이 과정이 결국 햄릿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진다는 게 영화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제 생각엔 이 영화를 셰익스피어 전기 영화로 접근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신 상실 이후의 삶을 다룬 가족 드라마로 본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상실 이후의 시간은 극적인 사건보다 훨씬 길고 지루하며 반복적이니까요.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거고요.
완벽한 기술성에 비해 감정은 멀게 느껴진 역설
촬영감독 우카시 잘의 작업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이다, 콜드 워,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찍은 사람인데, 햄넷에서도 그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자연광과 촛불만으로 만든 장면들은 마치 16세기 회화를 보는 것 같았고, 이끼 낀 숲과 진흙길의 질감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운드 디자인도 훌륭했습니다. 조니 번이라는 사운드 디자이너가 작업했는데, 그는 관객을 완전히 그 시대 속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발소리, 바람 소리, 천 스치는 소리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기술적 완성도가 오히려 영화를 차갑게 만든 것 같습니다. 너무 완벽하게 계산된 프레임, 너무 정교하게 디자인된 사운드, 너무 명확하게 설계된 감정 곡선. 모든 게 제자리에 있었지만, 정작 제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진짜 좋은 영화는 어딘가 날것의 순간이 있습니다. 계산되지 않은 우연, 예상치 못한 감정. 햄넷은 너무 완벽했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진짜 감정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분명 이 영화는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제시 버클리는 이 작품으로 상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술적으로도 완벽하고, 연기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 계산된 영화, 감정을 강요하는 영화로 남았습니다. 어쩌면 이게 좋은 영화와 완벽한 영화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GuG4iG0z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