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 어시스턴트 절반이 상사를 공유하거나 아예 혼자 두 명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도 현장에서 비슷한 상황을 직접 겪어봤는데, 효율을 위해 도입한 AI가 오히려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생산성 향상과 인재 육성 사이에서 할리우드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요.
어시스턴트가 AI를 쓰는 이유, 그리고 불안
"AI를 쓰라는 건, 나를 대체할 기술을 내가 가르치라는 소리입니까?" 현장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게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목격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 초반에 자료 조사, 일정 정리, 보고서 초안을 직접 손으로 반복하면서 업계 감각을 익혔던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과정 상당 부분이 몇 번의 프롬프트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선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줄어든 인력, 늘어난 업무, 그 사이에서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선택지가 아닌 생존 도구가 됐습니다. 생성형 AI란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 새로운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기술을 뜻합니다. ChatGPT, Claude 같은 LLM(대규모 언어 모델)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LLM이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과 유사한 언어를 생성하는 모델로, 쉽게 말해 '글을 읽고 쓰는 AI 엔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더 복잡한 건 이른바 섀도우 AI(Shadow AI) 문제입니다. 섀도우 AI란 기업이 공식 승인한 도구가 아닌, 무료 공개 AI 서비스를 회사 보안 정책 밖에서 몰래 사용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어시스턴트들이 클라이언트 일정, 계약 조건, 내부 메모 같은 민감한 정보를 공개 AI 툴에 그대로 붙여넣고 있다는 지적이 업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업 차원의 AI 교육이나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 삭감으로 교육 자체가 사라졌으니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현재 할리우드 어시스턴트들이 AI를 활용하는 주요 영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메일 초안 작성 및 감사 메시지 작성
- 회의 일정 조율 및 회의록 자동 생성
- 스크립트·서적의 커버리지(Coverage) 초안 작성
- 리서치 자료 정리 및 요약
2025년 THR이 차세대 리스트(Next Gen) 소속 임원·매니저 1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절반이 어시스턴트를 공유하거나 전혀 두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줄어든 구조에서 AI는 '도구'가 아니라 '빈자리를 메우는 대역'이 된 셈입니다.
커버리지는 AI 대체 불가 영역
커버리지(Coverage)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커버리지란 할리우드 개발 프로세스의 출발점이 되는 표준 검토 보고서입니다. 시나리오, 소설, 단편 등 원작 자료를 읽고 줄거리 요약과 품질 평가를 담은 문서를 말하는데, 이 커버리지 없이는 어떤 프로젝트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LLM이 생성한 커버리지는 줄거리 요약 속도가 확실히 빠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부분, 즉 캐릭터의 독창성이나 서사에 담긴 아이러니, 감정의 결이 살아있는지 여부는 AI가 잡아내지 못하더라고요. Chapman University Dodge College of Film and Media Arts의 학장이자 전직 스크립트 리더였던 Stephen Galloway도 같은 지점을 짚었습니다. AI는 감정을 요약할 수 없고 캐릭터의 독창성을 정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커버리지를 직접 수백 편 써본 사람의 말이라 설득력이 다릅니다. McKinsey Global Institute의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 도입이 빠른 산업일수록 초급 직무가 가장 먼저 자동화 압박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McKinsey & Company). 할리우드도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산업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이 점점 얕아질 수 있다는 걱정, 저는 그게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붕괴되는 도제식 문화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도제식(Apprenticeship Model) 문화의 붕괴입니다. 도제식이란 초급자가 선임 옆에서 반복 업무를 수행하며 실전 감각을 쌓아가는 인재 육성 방식으로, 할리우드는 수십 년 동안 이 방식으로 인재를 키워왔습니다. 그런데 AI가 반복 업무를 흡수하면서 초급자가 '손으로 익히는 시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효율 문제가 아닙니다. 자료를 직접 찾고, 비교하고, 틀리고,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시각과 판단력은 결코 프롬프트 몇 줄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Chapman University는 현재 AI 관련 수업을 다섯 개 운영하며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인간이 독립적으로 해낼 수 있는 영역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AI를 잘 쓰는 것과 AI 없이도 잘 하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관점은 단순히 학교 이야기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귀 기울여야 할 방향이라고 봅니다. AI를 배제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지금처럼 교육도 기준도 없이 효율만 쫓다가는, 산업은 더 빠르게 돌아가겠지만 그 안에서 성장할 사람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의 경험 축적 과정을 보존하면서 AI와 공존할지, 지금 업계 전체가 진지하게 답을 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지금 일하는 현장에서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계신다면, 이 변화가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닌 구조적 전환임을 한 번쯤 되짚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