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자가 자기 소설 속 캐릭터의 외모를 영화에서 처음 알게 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앤디 위어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일반적인 원작자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내 머릿속 이미지와 다르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과 달리, 위어는 오히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그가 왜 SF 작가로서 특별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만든 깊이있는 플롯, 작가가 인정한 이유
일반적으로 원작자는 영화화 과정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배우를 통해 구현되는 걸 보며 만족하거나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앤디 위어는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를 두고 "그가 라일런드 그레이스에게 수많은 층위의 깊이와 복잡성을 더했다"며 겸손하게 인정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태도는 흔치 않습니다. 많은 원작자들이 "내가 쓴 캐릭터가 훌륭해서 영화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위어는 인터뷰에서 고슬링이 라일런드를 믿을 수 있고 호감 가는 주인공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연기가 다른 배우들까지 좋게 만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작가가 배우에게 이 정도로 크레딧을 주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이는 위어가 영화화를 단순히 "내 작품의 번역"으로 보지 않고, 다른 예술가들이 자기 소설을 재발명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위어는 자신이 캐릭터를 쓸 때 시각적 상상력이 강하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다 쓰고 나서도 라일런드의 머리 색깔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캐릭터는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성격과 행동 패턴으로만 존재했던 겁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아, 이제야 이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다"고 느꼈다는 대목은 흥미롭습니다. 이런 태도 덕분에 영화 제작진은 원작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유롭게 시각언어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키라는 존재
로키에 대한 위어의 발언도 주목할 만합니다. 일반적으로 SF 소설에서 외계인은 작가가 세밀하게 설계한 시각적 존재로 묘사되곤 하는데, 위어는 로키의 구체적인 외형을 명확히 상상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가슴 부분에 다섯 다리가 달린 형태"라는 기본 구조만 알았을 뿐, 다리가 얇은지 두꺼운지, 표면이 매끈한지 울퉁불퉁한지는 영화 제작진의 퍼펫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는 겁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위어가 로키의 구현을 평가할 때 외형이 아니라 '관계성'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로키를 연기한 제임스 오티즈와 라이언 고슬링이 서로 즉흥적으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만들어낸 과정을 높이 샀습니다. 로키가 단순히 테니스공에 붙은 막대가 아니라 실제 배우처럼 존재했기 때문에, 고슬링이 진짜 상대역을 두고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저는 이 대목에서 위어 소설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겉으로 보면 "과학이 세상을 구한다"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 중심에는 낯선 존재와 협력하는 법을 배우는 우정이 있습니다. 위어 자신도 인터뷰에서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우정의 힘"이며, "사람들이 자신이 아끼는 이들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하는가"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라일런드가 인류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포기하고 로키를 구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은, 종의 생존보다 개인적 유대를 선택하는 순간입니다. 이게 많은 독자와 관객을 울린 이유겠죠. 위어는 다른 인터뷰에서도 "라일런드와 로키의 강렬한 우정이 없었다면 두 행성 모두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의 감정과 종의 생존이 대립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개인적 유대가 더 큰 구원의 열쇠가 된다는 거죠.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SF에서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SF는 개인을 희생시켜 전체를 구하는 서사를 택하거든요. 위어는 그 반대 방향을 선택했고, 그래서 더 인간적인 이야기가 됐습니다.
관계로 만들어간 캐릭터
위어는 자신을 플롯 작가로 평가하면서도,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약점이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라일런드 그레이스를 쓸 때는 의도적으로 "나 자신이 아닌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갈등을 두려워하고 타인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자기 논문이 학계에서 도전받자 아예 그 분야를 떠나 중학교 교사가 된 인물. 그리고 임무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게 아니라 강제로 끌려온 인물. 이런 설정은 전형적인 영웅상과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라일런드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그는 실패에서 시작하는 주인공입니다. 자신의 과학적 이론(생명체에 물이 필수가 아니라는 주장)을 스스로 반박하며 여정을 시작하고, 나중에는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강제 징집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일반적으로 영웅 서사는 주인공의 의지와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위어는 정반대로 갔습니다. 저는 이런 선택이 굉장히 건강해 보였습니다.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실수투성이 과학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과학의 모습에 가깝거든요. 앤디 위어라는 작가를 보면, 그는 과학을 사랑하지만 결국 그 과학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인간의 우월함이 아니라 협력의 가능성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나는 인류에 대해 아주 높은 평가를 갖고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돕는다. 그게 근본적으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칠레 광부 구조 사례를 들며, 전 세계가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일을 언급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위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의 낙관은 공허한 휴머니즘이 아니라, 구체적인 협력의 과정에 대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정리하면, 앤디 위어는 자기 작품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작가가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재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영화로 옮겨갈 때 원작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더한 깊이, 퍼펫으로 구현된 로키의 존재감, 그리고 실패에서 시작해 우정으로 완성되는 서사.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순한 과학 퍼즐이 아니라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됐습니다. 만약 아직 소설을 읽지 않으셨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꼭 원작도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위어가 어떤 식으로 문제를 설계하고 관계를 쌓아가는지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