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과 환경으로 관객을 던진 영화들
2000년대부터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매우 다른 새로운 부담을 지게 되었다. 관객의 주의 집중 시간이 새로운 저점에 도달함에 따라, 영화는 단 몇 분 만에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따라서 오프닝 시퀀스는 더 이상 단순한 서곡이 아니라 영화의 태도와 품질을 입증하는 무대가 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설명보다 경험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관객이 이해하기 전에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 제작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일부 영화는 관객이 영화의 줄거리를 잊어버릴 수 있을지라도 기억에 남았다. 침묵과 환경으로 관객을 던진 영화들을 소개한다. '데어윌비블러드: 그곳에 나쁜 피가 있다'의 오프닝은 거의 대사가 없었다. 그것은 광산에서 혼자 일하는 노동자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관객이 느끼는 불안은 고요함 때문이 아니라 고립 때문이었다. 캐릭터의 야망과 고집은 말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드러났다. 관객은 캐릭터를 이해하기도 전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올드보이'는 차분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지만, 곧 살인으로 전환된다. 이 대비는 도덕성이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즉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래비티'는 긴 원테이크를 사용하여 관객을 무한한 우주의 공간에 두었다. 방향 감각을 잃는 것은 오프닝 경험에서 필수적이었다. 이 영화들은 침묵과 환경을 이용하여 관객이 단순한 안전한 방관자가 아니라 내부 캐릭터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장르의 규칙을 처음부터 뒤집은 오프닝들
'다크 나이트'의 오프닝은 은행 강도를 묘사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시작하지 않는다. 범죄 장르의 문법으로 시작하여 현실적인 공포를 제시한다. 이 선택은 관객이 조커 캐릭터를 신화적인 슈퍼히어로가 아닌 진정한 위협으로 보도록 이끈다.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소수를 대표하는 조커를 보면서 그 안에서 보이는 선과 악의 모호성으로 인해 관객들은 그 사이에서 더한 긴장감과 공포를 얻게 된다. 관객 또한 선과 악의 모호성에 놓이기 때문이다. 최근 할리우드 대표 감독으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설명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 일부러 관객이 혼란을 겪도록 남겨두었다. 언뜻 과학 영화로도 보이는 이 영화는 양자역학을 시각함으로서, 처음부터 평범한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게 설계되었고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러한 불편함음 오히려 관객을 그 세계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여러 시리즈로 나온 매드 맥스 시리즈 중,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설명을 거의 완전히 생략하고 추격전으로 시작했다. 관객들이 보고싶어하는 것을 바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만족시키고 영화가 시작하는 셈이다. 캐릭터와 세계의 이해는 속도의 흐름을 통해 얻어졌다. 이러한 영화들은 장르의 규칙을 따르기보다 오프닝에서 새로운 규칙 세트를 강제했다.
감정을 반전시킨 오프닝 장면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는 대화가 폭력보다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장면이 있다. 농가에서의 긴 대화는 정보 전수가 아니라 심리적 압박이었다. 관중은 등장인물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정보적 차이로 인해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공포는 총성이 울리기 전 이미 완성된 셈이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설정했다. 폭력과 웃음이 뒤섞인 장면들이 나와도 관객은 끝까지 불안을 유지했다.
드라이브의 시작은 정반대로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주인공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고 체험하게 한 말 없는 도주 장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멋있음이 아니라 거리감을 남겼고, 관객은 이 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하기보다 관찰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의 폭력도 감정적 폭발이 아니라 차갑게 인식되었다.
소셜 네트워크는 빠른 대화로 시작했지만 그 안에는 단절만 남아 있었다. 말은 많았지만 이해는 없었다. 이 시점에서 이 영화는 성공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의 관계 실패의 기록임을 말씀드리고 있다. 이 세 영화 모두 관객의 정서적 좌표를 관서로 보지 않고 최초의 장면에서 정리했으며 그 이후의 전개도 정리된 좌표를 바꾸지 않았다.
이제 2000년대 이후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들이 관객에게 참을 수 없는 시련을 주게 되는데, 세계관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관객이 그 세계관, 그 영화, 그 이야기르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오프닝은 안내가 아니라 선언이 되었다. 이 영화들은 시작의 몇 분에서 관객을 시험했다. 감정들이 대놓고 들이대지 않고 위로가 아니라 저 멀리 관객을 보는 거리감을 남긴 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도 시작 장면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장면이 영화의 일부가 아니라 영화의 태도 그 자체였기 때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