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100만 팔로워를 모은 Gossip Goblin이라는 창작자의 작업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인류학과 조각을 전공한 Zack London이라는 35세 남성이 스톡홀름에서 혼자 만들어낸 음울한 SF 세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한 사람의 집요함과 세계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
많은 분들이 AI 영화를 이야기할 때 "이제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좀 다릅니다. Gossip Goblin의 작업 방식을 보면 프롬프트 하나로 완성된 영화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스크립트를 쓰고, 샷 리스트를 만들고, 캐릭터와 환경의 비주얼을 정의한 뒤, 수백에서 수천 개의 이미지와 영상 클립을 생성하고 편집합니다. 성우를 섭외하고 폴리 아티스트와 작업해서 사운드를 입히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전통적인 영화 제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단계를 거칩니다.
제가 직접 이미지 작업을 해본 경험으로는, AI 툴은 생성 자체보다 일관성 유지가 훨씬 어렵습니다. 같은 캐릭터가 다른 장면에서 다르게 보이거나, 조명과 분위기가 샷마다 달라지면 몰입이 깨집니다. London은 15개에서 25개의 서로 다른 AI 툴을 조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합니다. Midjourney로 초기 이미지를 만들고, 다른 모델로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또 다른 툴로 움직임을 만드는 식입니다. 결국 기술을 안다는 것보다, 자기가 원하는 세계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집요함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가 만든 첫 장편 단편 The Patchwright는 20분 분량으로 약 5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같은 세계관에 살과 금속이 결합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전문 성우와 오리지널 스코어까지 들어갑니다. 이 정도면 단순히 "AI로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한 사람이 구축한 세계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대부분의 AI 콘텐츠가 실패하는 이유
"슬롭slop"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AI가 생성한 저품질 콘텐츠를 비꼬는 말인데, 소셜미디어에는 정말 이런 게 넘쳐납니다. London 본인도 대부분의 AI 콘텐츠가 슬롭이라고 단언합니다. 기술에는 기본값 같은 게 있어서, 그냥 버튼만 누르면 전형적인 SF 이미지가 나옵니다. 빛나는 네온, 사이버펑크 느낌의 거리, 비슷비슷한 구도와 색감.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 작품과 구분이 안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AI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포토샵 필터를 처음 쓸 때도, 템플릿 디자인 툴을 쓸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기술이 쉬워질수록 기본값을 그대로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결국 모든 결과물이 비슷해집니다. AI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적으로 놀라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이미지들 사이에 일관된 취향과 강박이 없으면 그냥 화려한 스크린세이버에 불과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입니다. 많은 크리에이터가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이미지에만 집중하고,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Gossip Goblin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반복되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같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식의 신화 구축mythology building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해도 금방 잊힙니다. London은 초기에 내레이션 중심으로 작업했는데, 이건 기술적 한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엔 대사 장면을 설득력 있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분위기와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풀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서 다음 프로젝트는 25분 분량에 대사 중심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 속도라면 1년 뒤엔 또 뭐가 가능해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가능할까
London은 최근 테크 회사 일을 그만두고 소규모 펀딩을 받아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 목표는 대량생산이 아니라 작지만 완결성 있는 SF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가 투자자들에게 하는 피치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거대하고 여과되지 않은 SF 서사를 여러 세계와 아이디어와 스토리라인에 걸쳐 만들 수 있고, 이걸 작은 팀으로 꽤 안정적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사실상 AI 시대의 조지 루카스를 꿈꾸는 셈입니다. 실제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플랫폼 대부분이 그에게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배우와 감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은 호기심 차원이지만, 일부 배우들은 자신의 목소리나 외모를 AI에 라이선스해야 할지 질문한다고 합니다. 아직 누구도 명확한 답을 모르는 상황이지만, 관심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기대와 경계를 동시에 느낍니다. 기대되는 이유는, AI가 이제 한 사람의 미감과 집착을 담는 도구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대규모 SF를 만들려면 수억 달러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소수의 사람이 비슷한 규모의 시각적 결과물을 훨씬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독립 창작자에게는 엄청난 기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한 이유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주목받을수록 업계는 "봐라, 혼자서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큽니다. 제작비를 줄이고 인력을 줄이는 명분으로 쓰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London은 자신의 작업에도 여전히 성우, 폴리 아티스트, 작곡가 같은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모든 회사가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입니다. 그가 IP 소유권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I로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미래에는 노이즈가 엄청나게 많아질 겁니다. 그 속에서 가치를 가지는 건 사람들이 실제로 연결되는 캐릭터와 세계, 즉 IP입니다. 그래서 그는 할리우드와 협업하더라도 소유권을 양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진짜 AI 블록버스터가 나올까요? London은 "아마도"라고 답합니다.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불가피해 보인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첫 번째가 되는 것보다 잘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자금력 있는 회사들이 그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자신은 기술 증명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겠다는 뜻입니다. 결국 관객은 툴이 뭔지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가 설득력 있는지만 본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AI 영화든 뭐든, 앞으로 중요해지는 건 AI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AI로 만든 수많은 결과물 속에서도 자기 세계를 식별 가능하게 남길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Gossip Goblin이 흥미로운 건 AI를 잘 써서가 아니라, AI로도 결국 작가성은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평등해지지만, 세계관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요함은 여전히 소수만이 가진 무기입니다.